[인물포커스] '오송분기역 산파', 고 이상록위원장…각계 애도

"위기 때마다 충북을 구한 최고의 지도자"

민경명 | 기사입력 2015/01/11 [20:12]

[인물포커스] '오송분기역 산파', 고 이상록위원장…각계 애도

"위기 때마다 충북을 구한 최고의 지도자"

민경명 | 입력 : 2015/01/11 [20:12]
 

 

 

 

 

 

 

 

 

 

 

 

 

▲ 故 이상록 전 오송역유치 추진위원장.    

 

문장대용화온천개발저지 운동,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충북유치운동, 신행정수도건설추진 활동 등등등...
 
충북의 최대 현안과 위기 때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강단으로 현장에서 앞장서 도민들을 이끌며 현안을 해결하고 위기를 타개해 나갔던 이상록 선생. 
 
그 이상록 전 오송역유치 추진위원장이 지난 8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해 11일 충북대병원에서 영결식을 갖고 영면에 들었다.
 
영결식에서 이시종 충북지사는 "고 이상록 위원장님은 충북의 발전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해결해주시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앞장서서 충북을 구한 최고의 지도자"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충북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고인이 닦아 놓은 기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진정한 충북인 이상록이라는 이름을 현대사에 영원히 기록해 놓겠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영충호는 이상록 어른의 것"…원작자 칭호 봉헌
 
'신수도권 시대'와 '영충호(영남·충청·호남) 시대'란 신조어를 유행시킨 이시종 충북지사가 조어 원작자의 지위를 별세한 이상록 전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유치위원장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직접 작성한 조사를 통해 "충북의 위대한 지도자인 고인의 영전에 신수도권 시대의 중심 충북, 영충호 시대의 리더 충북이란 신조어 원작자 칭호를 감히 봉헌합니다"라면서 울먹였다.

각 언론은 고 이상록 위원장에 대해 '충북 현대사의 증인', '오송 분기역 산파' 등으로 표현하며 그의 업적을 회고했고, SNS 등에도 애도의 글이 이어졌다.

청원군 강내면 저산리 출신인 고인은 청주고와 청주대 상학과, 청주대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56년 영동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대성중·대성여상·청주상고·청석고 교장을 지낸 교육자다.
 
특히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충북유치추진위원장(1991~2003년)과 호남고속철 분기역 오송유치위원장(1995~2004년)으로 활동하며 오송역 개통(2010년 11월 1일)에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이어 신행정수도건설충북연대위원장(2004년)을 맡아 세종시 탄생의 토대를 다졌고, 문장대 용화온천개발저지 충북도민대책위원장(1994~2004년) 직을 수행하며 충북의 산하를 지켰다.
 
또 충북산악연맹회장, 청주민간단체협회장, 충북체육회 사무처장 등 지역사회를 위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쳐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87년 '연봉 1억원' 대우를 받던 동원탄좌개발 이사직에서 물러나 충북체육회 사무처장(1987∼1991)을 맡으면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이날 유족들은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치르자는 각계의 요구를 거부하고,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지냈으며, 고인의 유해는 고향인 강내면 저산리 선영에 묻혔다.
 
/ 민경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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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0/09/21 [17:57] 수정 | 삭제
  • 오송역 하나때문에 호남고속선이 버스보다 경쟁력 떨어뜨리게 해놓은 인간에게 애도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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