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술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생각을 현실로 끌어오게 하죠“

링 엔터테인먼트 대표 마술사 신철호 씨, “허구의 상상 이야기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파“

오홍지 기자 | 기사입력 2019/10/15 [00:25]

[인터뷰] “마술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생각을 현실로 끌어오게 하죠“

링 엔터테인먼트 대표 마술사 신철호 씨, “허구의 상상 이야기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파“

오홍지 기자 | 입력 : 2019/10/15 [00:25]

▲ 청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술사 신철호 씨. 그는 링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2019.10.14     © 오홍지 기자


지구는 사실, 평평해요. 제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죠.

 

[충북넷=오홍지 기자]마술사 신철호(29)가 엉뚱한 소리 한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그가 펼친 마술을 보면 그럴 것도 같다. 마술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생각을 현실로 끌어오게 할 수 있어요. 발상은 자유니까. 마술은 고정관념을 깨고, 불가능한 현상을 가능케 한다는 그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며 내가 가지고 있는 허구의 상상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소망한다.

 

검은 모자에서 새가 나오고, 또다시 모자에서는 꽃이 나온다. 흔히 볼 수 있는 마술의 식상한(!) 단골 쇼. 객석에서는 환호 소리가 나온다. 지켜보는 아이들 눈은 초롱초롱하다. 그런데 함께 온 어른은 어째, 좋아한다(?). 어째서일까. 50~60대들이 아직도 저 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스토리 때문이다. 마술사 신철호는 검은 모자에서 새가 나오도록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다 실수가 나온다. 그래도 괜찮다. 이 또한 쇼의 일부분이라서. 관객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어른들도 알면서도 크게 웃는다.

 

마술사 신철호 씨는 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고 했다.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금껏 자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은 마술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고, 문화는 접하지만, 사실 문화가 무엇인지를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문화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가져야 할 관념과 사상을 형성해야겠다고 했다. 그가 이 생각을 끝마쳤을 당시는 대학교 4학년 때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졸업을 앞둔 신철호 씨는 수익 없이 프리랜서로 마술 공연 활동을 다녔다. 대부분 문화 소외계층 공연이라 출연비도 없는 곳이다. 행사의 의의만 보고, 제가 가는 공연에 의미만 두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연했어요. 후회 없어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올해 나이 29살, 마술공연·교육 전문 업체 링 엔터테인먼트 대표겸 경력 15년 차인 마술사 신철호 씨를 최근 만났다. 나른한 오후 적적한 골목에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 마술사 신철호 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9.10.14     © 오홍지 기자


- 처음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보다 마술 자체를 시작한 계기를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제 앞에서 마술을 보여주는데, 글쎄 너무 신기한 거예요(웃음). 마술의 속임수도 궁금해 혼자 알아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취미를 가졌죠. 한 2주 정도 친구한테 부탁해 알려달라고 했죠.

 

- 마술은 어떻게 배웠나.

 

당시, 청주지역에 있던 ‘미디어스‘라는 마술동호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마술을 배우는 중이었고, 저는 그 친구에게 매달렸죠. 친구가 저에게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권유했고, 마술을 배워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고, 마술을 시작하게 됐죠. 마술동호회에서 맨 처음으로 카드 마술을 접했는데, 그 외에도 동전 마술과 휴대전화를 가지고 하는 마술 등을 다양하게 알게 됐죠. 너무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죠(웃음).

 

- 당시 국내 마술의 위치는 어땠나.

 

전국적인 붐을 타던 중이었어요. TV 프로그램에서 이은결 마술사나 최현우 마술사가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어요. 또, 호기심 천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타이거 마스크가 마술 속임수를 알려주는 프로도 있었죠. 그렇게 되면서 마술이 예술의 범주로 들어서게 됐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죠. 얼마나 인기가 있었느냐면 우리나라에서 마술 학과가 유일하게 1개가 있는데 학생이 120여 명이 넘겼었죠.

 

저도 그 학과 출신이죠. 2004년에 학과가 개설되면서 지금도 마술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활발하게 양성하고 있죠. TV에서 활동하는 마술사들이 특강을 오시기도 했어요. 이후 마술학회도 생기고, 마술협회도 생기고, 정말 수많은 단체가 생겼어요. 이어서 자격증 발급도 가능하게 됐죠.

 

-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

 

아버지가 마술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심하게 했어요. 고등학교를 실업계로 진학해 많은 시간을 마술에 할애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제가 마술에 빠져 있었거든요. 중학교 시절에는 그저 취미로 생각해 내버려 뒀는데, 고등학교 진학에서는 문제가 심각했어요. 난리가 났죠. 이후부터 부모님과 이 일로 수년간 갈등을 빚게 됐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던 것 같아요. 이유는 할아버지가 교사였거든요. 친척들도 교직에 계시다 보니 아버지는 제가 학업에 집중하길 원했죠.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인문계에 진학게 됐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집안에서 마술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했어요. 물론, 집에서는 입 밖에 꺼내놓지 못했지만, 부모님 모르게 계속 마술을 배웠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들키긴 했지만요(웃음). 사실 부모님의 심정도 이해는 가요. 마술사라는 직업이 쉽지 않은 길이죠. 흔한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장르가 사회에 제대로 정착 한 것도, 일반적인 인식으로 자리한 것도 아니고요. 미래가 걱정된 것이죠. 마술사라는 직업으로 흔히 말해 ‘벌어 먹고살 수 있냐‘라는 거죠(웃음). 다행히도 제 확고한 의지에 부모님도 결국, 알아주셨어요. 인정해 준거죠(웃음).

 

▲ 마술의 미래를 고민하는 마술사 신철호 씨. /2019.10.14     © 오홍지 기자


- 마술의 시대적 인식은 어떤가.

 

사실, 중세시대부터 마술은 오락, 쇼의 한 부류였죠. 유흥거리의 하나였죠. 기독교에서도 마술을 하는 자는 흑마술(마녀) 같은 것이라며 경시하고, 괄시했어요. 오컬트적인 부분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그런 마술이 중세를 거치며 점차 현대로 오면서 변하게 됐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해 가지고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죠. 현재 마술이 가지는 가치는 오컬트적인 가치는 없어졌어요.

 

- 마술은 순수예술보다 상업예술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가.

 

본래가 유흥거리에다 사람들의 괄시로 순수예술로 가기에는 힘들었지만, 상업예술로서는 큰 발전을 할 수 있었죠. 상업예술로 발달한 계기가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유흥거리, 또는 길거리 서커스, 약장수에 의해 마술이 행해지기도 했죠. 특히, 밤 문화에서 마술이 더욱 번창을 이뤘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많이 활동하다 보니 상업예술로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잠깐의 유희 거리로서의 가치밖에 가지 못했었죠.

 

그런데 점차 수면 위로 오르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가치를 다시 개정하게 돼요. 중국에서는 마술사에 대한 가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마술사와 마법사의 차이에 관한 것인데, ‘마법사는 오컬트적인 부분이 강한 것이고, 마술사는 배우·연기자의 성격이 강하다.‘ 즉, 마법사를 연기하는 배우·연기자(마술사)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현재는 이를 통틀어 ‘마술사‘라고 불린다고 하네요.(웃음)

 

- 무대에서 실수는 어떻게 대처하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돌발상황도 누구나 발생할 수 있는데, 당황하지 않고, 그걸 유머러스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프로다우니까요. 평상시 무대에서 실수할 경우를 대비해 많은 돌발상황 대처를 생각해요. 돌발상황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지 수를 생각해 놓은 다음 일일이 대입을 하면서 다른 대처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

 

군대에 있을 때에요. 똑같은 마술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샌가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모두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러다가 머리를 강하게 맞은 일이 생겼어요. 어느 한 공연이었죠. 공연을 모두 끝내고 플러스 무대로 마술 공연을 펼치고 내려오는데, 한쪽에 지체 장애가 있던 휠체어를 탄 친구들이 있었어요.

 

특별반 친구들인 것 같아요. 그중에 특별반 선생님이 저를 잠깐 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갔죠. 그런데 지체가 있는 꼬마 친구가 제 손등에 별 스티커를 붙여주는 거예요. 제게 ‘잘했다‘는 거죠. 순간 ‘울컥‘했어요. 그러면서 왜 마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리마인드가 됐죠. 이후로 마술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죠(웃음).

 

- 자신만의 신기술이 있나.

 

신기술까지는 아니고, 저만의 작품 스타일과 작품이 있어요. 보통 작품성을 보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보거든요.

 

- 고충은 없었나.

 

젊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정말 많지가 않아요. 특히, 비주류 쪽에 있는 분들은 더욱 그러하죠. 저 같은 경우는 정신병원에도 찾아가 공연했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것, 대중들 앞에 서는 기회가 너무 소중했죠. 심지어 청년문화, 젊은 문화 유입속도도 느려요. 지원도 많지 않고요. 밴드 하는 친구들, 아마추어 음악가들, 미술가들 등 젊은 세대가 청주를 떠나가고 있어요. 해서 저는 중부권 문화, 청년문화를 살리려고 직접 어떤 모임을 조직해 이들이 뭔가 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마술사 신철호 씨. /2019.10.14     © 오홍지 기자


- 자신과 같은 청년 예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혜택을 문화인들만 받으라는 건 아니잖아요. 일반 시민들에게 더 많이 가야 해요.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으니까. 그 방법은 문화인이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시스템을 만들어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지역이나 외국이든 벤치마킹을 해야 해요.

 

젊은 층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요즘 얼마든지 벤치마킹을 하고, 끌어올 수 있는 여건이 많거든요. 이런 것에 대한 자유도가 우리 세대가 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본받을 곳이 많아요. 본받을 곳을 둘러보면서 청주로 끌고 와야 해요. 밝은 사회 분위기도 조성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청주를 매일, 매달 너무 재미있고,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가야 해요.

 

- 앞으로 계획은.

 

올해 하반기에 열리는 2019 청주 공예비엔날레에서 공연을 하나 합니다. 장르는 전통마술인데요.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 ‘꿈을 파는 보부상‘이에요. 보부상이라는 말은 보상과 부상이 합쳐져 만들어졌죠. 예전 우리나라에서 보부상이 한창 성황을 이뤘던 적도 있어요. 이번 공연은 보부상을 주제로 보부상이 재주도 부리고, 묘기도 부리면서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과 꿈을 주는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려고 해요.

 

-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저는 이제 막 ‘스타트‘에요. 마술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어려서부터 했지만 이제 겨우 한 발짝 내디뎠다고 생각해요. 아직 무대에 어떤 경험이나 설 자리를 확실하게 잡지 못한 예술 하는 친구들이 보기에는 제가 선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문화예술이라는 계통에서 너무나 까마득한 후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작품을 준비하고, 경험을 쌓고,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아요.

 

이것들을 하나하나 풀어서 나중에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과 즐거운 생각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만들어 보여드릴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테니 많이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근본 베이스가 ‘마술‘이기 때문에 마술이라는 장르 자체를 앞으로도 더 많이 생각해 주고,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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